비트코인, 미국 국채의 새로운 수요처가 되나?
서론: 미국 국채, 흔들리는 글로벌 안전자산의 상징
미국 국채는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불려왔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들은 달러화와 미국 국채를 기축자산으로 삼아 글로벌 금융질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국가신용등급 하락, 국채 입찰 부진 등으로 인해 미국 국채의 절대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2024년 이후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돌파하고, 주요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이면서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전통적 국채 수요처의 이탈을 보완할 새로운 플레이어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이 미국 국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지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스테이블코인, 국채 수요의 숨은 견인차?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실물자산에 1:1로 연동되어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암호화폐다. 테더(USDT), USDC, DAI 등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량만큼의 달러화 또는 미국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2025년 현재, 테더가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이는 한국, 브라질 등 주요 국가의 국채 보유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다.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향후 2~3년 내 미국 국채에 최대 2조 달러의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글로벌 결제, 송금, 자산운용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그 준비자산으로서 미국 국채의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이는 외국 중앙은행이나 민간 자금의 이탈을 디지털 자산 기반에서 일정 부분 보완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비트코인, ‘디지털 피난처’로서의 역할 확대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국채와 달리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최근 미국 국채와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디지털 금’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2024~2025년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미국 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기관투자자들의 본격적 유입이 이어지며 제도권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변동성이 크고, 법정화폐와 달리 정부의 보증이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미국 국채와 달러화의 신뢰가 약화될 때마다 ‘디지털 피난처’로서의 투자 매력이 부각된다. 특히 글로벌 자금이 미국 국채에서 이탈할 때, 일부는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월가의 전략 변화
미국 정부와 월가는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 등 디지털 자산의 부상을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코인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 국채 수요를 유지·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국채 보유 확대는 미국 재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지나친 디지털 자산 시장의 팽창은 달러 패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와 육성, 암호화폐 과세 등 다양한 정책을 병행하며, 글로벌 금융질서 내에서 디지털 자산의 역할을 조율하고 있다.
글로벌 국채시장,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의 부상은 단순히 새로운 투자처의 등장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글로벌 국채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외국 중앙은행, 연기금, 글로벌 은행이 미국 국채의 주요 수요처였다면, 이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이 점차 그 역할을 일부 대체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결제, 탈중앙화 금융(DeFi), 크로스보더 송금 등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며,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비트코인 역시 글로벌 투자자산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며, 미국 국채와 경쟁·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과 신흥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투자자와 정책당국은 이 같은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의 성장세는 미국 국채금리, 환율, 글로벌 자금 흐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역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스테이블코인 규제, 가상자산 투자환경 개선 등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전통적 투자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디지털 자산을 일정 부분 편입하는 전략적 변화도 고려할 시점이다. 글로벌 금융질서가 디지털 자산과 법정화폐, 국채가 공존하는 다원적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앞으로도 미국 국채시장에 새로운 수요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조 달러, 3조 달러로 성장할 경우,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다만, 디지털 자산 시장의 변동성, 규제 리스크, 글로벌 금융시장과의 상호작용 등은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할 변수다.
미국 정부와 월가는 디지털 자산을 활용한 국채 수요 유지, 달러 패권 강화, 글로벌 금융질서 주도권 확보라는 전략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투자자와 정책당국 모두 디지털 자산의 부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결론: 디지털 자산과 국채, 새로운 공생의 시대
미국 국채의 절대적 위상이 약화되는 시대,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대체 투자처를 넘어 미국 국채시장에 새로운 수요 기반을 제공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과 법정화폐, 국채가 공존하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질서가 도래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와 정책당국은 이 같은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기회와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