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밸류업지수, 숫자 뒤에 가려진 진실
코리아밸류업지수 1년의 교훈: 숫자 뒤에 가려진 진실
"6.92%의 수익률은 성공인가, 착시현상인가"
서론 : 코리아 디스카운트와의 전쟁, 그 첫 번째 전투
2024년 9월 24일 한국거래소가 선보인 코리아밸류업지수는 단순한 지수가 아닌 국가적 과제의 상징이었다. 2023년 말 코스피의 PBR이 0.86배로 추락하며 본격화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란은 한국 증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기업의 수익성 강화, 주주환원 확대, 자본 효율성 제고라는 3대 원칙 아래 선정된 100개 종목은 단숨에 7,000억 원 규모의 ETF 자금을 끌어모았고, 2025년 5월 기준 6.92%의 수익률로 코스피200(2.13%)을 압도하는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는 방산·원전 업종의 전쟁 특수, 대형주의 편중, 외국인 자본 이탈이라는 3중 고리가 도사리고 있다. 1년의 데이터는 성공담보다 경고장에 가깝다.
수익률의 신화를 해체하다, 6.92%의 이면
2024년 9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코리아밸류업지수의 누적 수익률 6.92%는 표면적으로는 성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업종별로 분해하면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방산·원전 업종이 22%의 비중을 차지하며 평균 19.3%의 상승률을 기록한 반면, 필수소비재(8% 비중)는 -4.2%, 금융(9% 비중)은 -1.8%의 하락률을 보였다. 삼성중공업(12.7%), 한화에어로스페이스(9.3%) 등 방산 대표주들의 주가가 평균 22% 상승하며 지수를 견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라는 외부 변수에 의존한 결과다. 더욱이 2025년 5월 리밸런싱에서 방산 업종 비중을 22%로 확대한 것은 단기 수익률 극대화 전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지수의 진정한 문제는 출시 초기 3개월간의 부진에서 드러났다. 2024년 9월부터 12월까지 -3.2%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45개 종목이 10% 이상 급락했다. 에스에이엠(전자부품)은 18.2%, 유니셈(반도체 장비)은 14.7% 하락하며 시장의 냉소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는 기존에 주가 조작 논란이 있던 종목들이 '밸류업'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된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해석된다. 특히 2024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금융주들의 급락이 지수 전체를 끌어내렸는데, 신한지주(-23%), 우리금융지주(-19%) 등이 정치적 리스크에 취약함을 노출했다.
선정 기준의 모순, '밸류'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거래소가 제시한 5단계 스크리닝 과정은 겉보기엔 합리적이다. 시가총액 상위 400위 내, 2년 연속 적자 배제, 주주환원 실시, PBR 산업군별 상위 50%, ROE 산업군별 상위 100개라는 기준이다. 그러나 실제 편입 결과를 보면 '밸류업'보다 '그로스' 지수에 가깝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편입 종목 중 PBR 3배 이상이 32개, ROE 20% 이상이 28개에 달하며, 이는 전형적인 고성장주 특성이다. 반면 PBR 1배 미만의 진정한 저평가주는 단 8개에 불과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주주환원에 대한 평가 방식이다. 단순히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실시했는지 여부만 확인할 뿐, 그 규모나 지속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편입 종목 중 배당수익률이 2% 미만인 기업이 53개, 배당성향이 20% 미만인 기업이 54개에 달한다. 이는 주주환원의 '질적' 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OCI홀딩스는 영업이익 34% 감소에도 불구하고 차입금을 동원해 2,300억 원의 자사주 매입을 실행해 편입 자격을 얻었는데, 이는 인위적 ROE 부풀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의 탈락은 이러한 선정 기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KB금융은 2023년 가장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시행하고 밸류업 공시를 전 기업 최초로 예고했음에도 ROE 요건 미달로 제외됐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PBR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했다. 반면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엔씨소프트, SM엔터테인먼트, 두산밥캣이 편입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UBS는 "100개의 편입 종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밸류업 지수가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래소가 빨리 깨닫길 바란다"고 혹평했다.
업종 편중의 구조적 문제
코리아밸류업지수의 가장 큰 약점은 업종 편중이다. IT(22%)와 산업재(23%)가 전체의 45%를 차지하며, 방산·원전(22%)까지 포함하면 특정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67%에 달한다. 이는 '밸류업'이라는 명분과 거리가 멀다. 진정한 저평가 업종인 필수소비재(8%)와 금융(9%)의 비중은 오히려 낮다. 2025년 5월 리밸런싱에서 필수소비재 비중을 12%로 확대했지만, 여전히 시장 평균 PBR(0.88배)과 괴리감이 존재한다.
업종 | 편입 비중 | 평균 PBR | 평균 ROE | 수익률(1년) |
IT | 22% | 3.4 | 19.2% | +8.7% |
산업재 | 23% | 2.1 | 14.3% | +12.3% |
방산·원전 | 22% | 1.4 | 14.7% | +19.3% |
헬스케어 | 9% | 4.8 | 22.1% | +6.1% |
필수소비재 | 8% | 0.8 | 7.9% | -4.2% |
금융 | 9% | 0.65 | 8.3% | -1.8% |
이러한 편중은 지수 구성 규칙 중 '산업군 내 상위 50% PBR' 조항이 역으로 고PBR 업종의 과도한 집중을 초래한 결과다. 실제로 IT 업종의 평균 PBR은 3.4배로 시장 평균(0.88배)의 4배에 달하며, 헬스케어는 4.8배로 더욱 높다. 반면 금융업종의 PBR은 0.65배로 명백한 저평가 상태임에도 편입 비중이 9%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밸류업'이 아닌 '그로스업' 지수라는 비판을 낳았다.
ETF 시장의 양극화와 실망
코리아밸류업지수를 추종하는 ETF들의 성과는 엇갈렸다. 패시브 ETF인 TIGER 코리아밸류업은 7.35%의 수익률로 지수를 충실히 추종했지만, 액티브 ETF들은 4.1%의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이는 액티브 펀드 운용사들이 30% 자율 투자 권한을 활용해 비편입 종목에 45%를 투자한 결과다. 이들은 '밸류업' 본연의 목적을 훼손하며 오히려 개별 주식 투자(9.3% 수익률)보다 낮은 성과를 냈다.
전체 ETF 거래량에서 개인 투자자 비중이 78%를 차지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기관투자자들의 냉담한 반응은 이 지수에 대한 전문가들의 회의적 시각을 반영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더욱 차갑다. 2024년 4분기 2.5조 원의 순유출이 발생했으며, 미국 펀드 중심으로 1.7조 원이 철수했다. 2025년 상반기 들어 아시아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0.8조 원의 순유입이 있었지만, 블랙록은 6월 7,200억 원의 추가 철수를 발표하며 ESG 등급 하락 우려를 표명했다.
기업 행태 변화의 허상과 실체
밸류업지수 편입을 위한 기업들의 주주환원 확대는 분명 긍정적 변화다. 2024년 4분기 자사주 매입 규모는 7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0% 증가했으며, 배당성향도 25.3%에서 31.7%로 상승했다.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기업도 2024년 2분기 3개사에서 2025년 2분기 150개사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편입 기업 중 23개사는 영업이익 감소(-14% 평균)에도 불구하고 차입금을 동원해 주주환원을 실행했다. 이는 단기적 주가 부양을 위한 무리수로 해석된다. 대표적으로 OCI홀딩스는 영업이익 34% 감소했음에도 자사주 매입에 2,300억 원을 투입했고, 동국제강은 영업이익률 -1.4%를 기록하면서도 ROE 18.2%를 달성해 편입 자격을 얻었다. 이는 자사주 매입을 통한 인위적 ROE 부풀리기로, 건전한 기업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5년 상반기 편입 종목의 평균 부채비율이 89%로 전년 대비 7%포인트 증가한 점이다. 이는 주주환원을 위한 차입 증가가 재무 건전성을 해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현대차는 편입 후 주가가 14% 상승했지만 부채비율이 89%에서 92%로 악화됐고, 신한지주는 배당성향을 25%에서 35%로 개선했지만 대출 부실비율이 0.3%에서 0.45%로 상승했다.
글로벌 비교: 일본의 교훈과 한국의 함정
코리아밸류업지수는 일본의 JPX 프라임 150 지수를 벤치마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 사례는 오히려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JPX 프라임 150은 초기 2년간 34% 상승 후 3년차부터 -12%의 역성장을 보였다. 이는 초기 호재 소진 후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결과다. 더욱이 2025년 5월 기준 JPX 프라임 150의 수익률은 9.1%로 시장 평균(15.1%)을 크게 밑돌았다. 이는 '밸류업' 지수가 장기적으로 시장을 아웃퍼폼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경우 일본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업종 편중이 일본보다 심하다. 일본은 제조업(35%), 서비스업(28%), 금융업(18%)로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반면, 한국은 IT·산업재·방산이 67%를 차지한다. 둘째, ESG 평가가 미흡하다. 일본은 MSCI ESG 등급을 편입 기준에 포함시켰지만, 한국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편입 종목의 평균 MSCI ESG 등급은 BB로 투자 부적격 수준이다. 셋째,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급감하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 비중이 30%에서 33%로 증가한 반면, 한국은 32%에서 29%로 감소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성 재검토
코리아밸류업지수의 궁극적 목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다. 그러나 1년간의 데이터는 오히려 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지수 출시 후 코스피 전체 PBR은 0.99배에서 0.88배로 11% 하락했다. 이는 편입 종목의 PBR 상승(2.0→2.6배)이 비편입 종목의 PBR 하락(0.82→0.71배)으로 상쇄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즉, 일부 우량주에 대한 자본 집중이 오히려 시장 전체의 균열을 심화시킨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도 냉담하다. 2024년 3분기 32.1%였던 외국인 투자 비중은 2025년 2분기 28.7%로 급감했다. 특히 미국 펀드운용사들의 이탈이 두드러진다. 블랙록은 2025년 6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속도가 지수 편입 요건보다 느리다"며 7,2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철수했다. 이는 코리아밸류업지수가 국제 기준의 ESG 평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5년 차 역대 시뮬레이션(2019-2024)에서 43.5% 수익률을 기록한 이 지수가 실제로는 단기 실적과 대조된다는 점이다. 시뮬레이션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백테스팅 결과일 뿐, 실제 시장에서의 성과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특히 방산 업종의 비중이 높아진 현재 구성으로는 전쟁 특수가 끝날 경우 급격한 하락 위험이 있다.
제도적 보완책과 미래 전망
코리아밸류업지수가 진정한 의미의 '밸류 혁명'을 이뤄내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지배구조 평가를 강제화해야 한다. 편입 기업에 대해 이사회 독립성 지표(40% 이상 독립이사) 의무화와 MSCI ESG 등급 상위 50% 기업 우대 편입이 필요하다. 둘째, 실적 부진 기업에 대한 퇴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2년 연속 적자 기준을 연속 2분기 영업적자 발생 시 즉시 제외로 강화해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 할당제를 도입해 코스닥 상장사 비중을 현재 33%에서 50%로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 충족을 위해서는 영어 공시 의무화(분기 보고서, IR 자료)와 IFRS 17(보험계약 회계기준) 선제적 도입이 필요하다. 또한 실시간 편입 프로세스 공개를 통해 스크리닝 알고리즘을 오픈소스화하고, 기관투자자·소액주주·학계 대표가 참여하는 이해관계자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세제 혜택 차등화를 통해 주주환원 확대 기업에 법인세 3%포인트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시장 참여자들의 엇갈린 평가
코리아밸류업지수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긍정론자들은 단기적 성과(6.92% 수익률)와 기업들의 주주환원 확대(자사주 매입 25% 증가, 배당성향 6.4%포인트 상승)를 근거로 제시한다. 특히 밸류업 계획 공시 기업이 3개사에서 150개사로 급증한 것은 분명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 개발의 주요 취지가 저평가 또는 고배당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수익성, PBR, ROE 등 질적지표가 우수한 대표 기업들로 지수를 구성해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시켜 한국 증시의 전반적 가치 제고가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환원 제고 등에 메리트를 부여하겠다는 정책방향과 달리, 지수의 종목 선정 로직이 고 PBR, 고 ROE로 단순하게 결정돼 정책방향에 부합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평가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100개 종목 중 배당수익률이 2%를 밑도는 종목이 53개에 달했다"며 "이분법적인 주주환원 척도로 인해 주주환원의 질적인 부분은 고려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해외 투자은행들의 평가는 더욱 가혹하다. UBS는 "100개의 편입 종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밸류업 지수가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래소가 빨리 깨닫길 바란다"고 혹평했다. CLSA도 '밸류 다운?(Value-dow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구성 종목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준 미달의 SK하이닉스가 편입된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결론 : 가치 혁명인가, 유리천장인가
코리아밸류업지수의 1년은 한국 자본시장이 '가치'라는 단어를 재정의하는 과정이었다. 6.92%라는 수익률 숫자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업종 편중, 외국인 자본 이탈, ESG 미충족이라는 3중 고리가 도사리고 있다. 방산·원전 업종의 전쟁 특수에 의존한 성과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진정한 저평가 업종인 금융과 필수소비재의 소외는 '밸류업'이라는 명분과 거리가 멀다. 더욱이 외국인 투자자 비중 3%포인트 감소와 코스피 전체 PBR 11% 하락은 이 지수가 애초 목표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수가 가져온 변화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150개 기업의 밸류업 계획 공시, 25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배당성향 6.4%포인트 상승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진정한 기업 가치 향상이 아닌 단기적 주가 부양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입금을 동원한 자사주 매입, 영업이익 감소 중에도 강행된 배당 확대는 오히려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치고 있다.
2026년을 목전에 둔 지금, 코리아밸류업지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단기적 성과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 개혁을 통해 진정한 가치 창출 도구로 거듭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업종 편중 해소, ESG 평가 강화, 글로벌 스탠다드 충족이라는 3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지수는 '밸류 혁명'이 아닌 '밸류 착시'로 기록될 것이다. 숫자 너머의 본질을 직시할 때만이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하다. 1년의 실험은 끝났다. 이제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