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2. 07:56ㆍ이슈 : 함께 세상살기

[칼럼] 초단시간 노동, 2년의 무게 — ‘무기계약직 전환’의 명암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 주 15시간 미만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근로시간의 표기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계선이자,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며, 동시에 국가가 오랫동안 방치해온 사각지대의 좌표이기도 하다. 편의점의 야간 계산대, 대형마트의 시식 코너, 주말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의 임시 판매대, 그리고 아파트 경비실의 오후 교대 근무. 이런 자리들은 오랫동안 학생, 경력단절 여성, 노년층, 그리고 생계의 빈틈을 메우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채워왔다. 이들의 하루는 길었지만 법이 보호하는 시간은 짧았다. 주 15시간 미만이라는 이유로, 주휴수당도, 연차휴가도,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수백만 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깊이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추진하려는 ‘초단시간 근로자 무기계약직 전환’ 정책은 이 고요한 수면 위에 돌을 던졌다.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더라도 2년 이상 근속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민간부문으로의 확대를 위한 법제화도 예고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조치처럼 보인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이제야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이 시작됐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장은 마냥 환호하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와 영세 사업주들은 벌써부터 계약 관리 방식의 변화를 고민하며,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종료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제도의 취지가 ‘고용 안정’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고용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주 15시간이라는 기준선은 원래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 학생 아르바이트나 임시직 근로자가 학업이나 다른 생업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판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기준이 정규 노동 비용을 피하려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근로시간을 14시간 50분으로 쪼개거나, 주 3일만 근무하게 하는 방식이 널리 퍼졌다. 그 결과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 10년간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4년 59만 명이던 이들은 2025년 현재 154만 명에 달한다. 단순한 통계 증가가 아니라, 그 안에는 제도권 밖에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무게가 실려 있다.
이번 정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과거 비정규직보호법이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던 ‘2년 전환 규정’을 처음으로 초단시간 노동자에게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했지만,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그 범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번 개편안은 이 배제를 철폐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무기계약직’ 전환이 곧 ‘정규직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무기계약직은 해고 요건이 정규직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고용 안정성이 있지만, 임금 수준과 복지 혜택에서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즉, 법적 지위는 바뀌더라도 삶의 질이 동일하게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영세 사업주 입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2년 이상 고용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생길 경우, 매출 변동이나 경영 악화에 대응할 유연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1년 반, 1년 11개월 등 특정 시점에 계약을 종료하는 ‘조기 해고’가 만연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시행해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성패는 시행 초기의 설계와 현장 적용 방식에 달려 있다. 법 조항 몇 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번 변화는 분명 한국 노동시장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험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법을 고치는 것을 넘어, 현장의 심리와 경제 구조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초단시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분야가 소상공인 중심의 유통·서비스업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주로 고령층·여성·청년층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도의 설계가 이들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지켜주지 못한다면, ‘무기계약직 전환’은 종이에만 존재하는 선언으로 끝날 수 있다.
'이슈 : 함께 세상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비자를 속이는 '다크패턴', 당신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0) | 2025.10.26 |
|---|---|
| 알래스카에서 시작된 글로벌 외교와 에너지 빅딜, 트럼프-푸틴 회담과 LNG 프로젝트의 숨은 이야기 (5) | 2025.08.17 |
| “상속 안 하는 글로벌 부자들 진짜일까?" 세계 대기업 2·3세의 돈, 권력, 그리고 바뀌는 룰 (6) | 2025.08.09 |
| 저커버그의 3,500억 베팅” 24살 AI 천재가 바꿀 메타의 초지능 전략 (10) | 2025.08.09 |
| 한국 인천에서 열린 첫 APEC 디지털·AI 장관회의: 글로벌 협력과 신뢰 기반 미래로의 도약 (9) | 2025.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