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5. 02:35ㆍ이슈 : 함께 세상살기

간병비 급여화, 왜 모두가 외치나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간병비’는 더 이상 일부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현실이 된다. 치매, 뇌졸중, 암 등 장기 입원과 돌봄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이 급증하면서, 간병비는 수많은 국민의 삶을 파탄 내는 ‘사회적 재난’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시는 중산층 가정조차 월 수백만 원의 간병비 부담에 허덕이고, ‘간병 파산’ ‘간병 살인’ 같은 비극적 사건이 연이어 보도된다. 이런 현실에서 간병비 급여화는 국민적 공감대와 절박함을 등에 업고 대선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여야 대선후보들은 앞다투어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가족 간병 지원 등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복지국가’로의 도약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정 허용 범위 내 단계적 확대”, “건보 재정 효율화”, “예산 구조조정” 등 추상적 언급만 반복될 뿐, 실제로 연간 1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실질적 청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건강보험 재정, 이미 한계에 다다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4년 현재 건강보험 적자는 3조 원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5조 원 이상 적자가 예상된다. 2030년대 초반이면 건강보험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진료비 상승 등으로 건강보험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보험료 인상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미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 기준 월평균 15만 원을 넘어섰고,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의 부담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간병비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간병비 급여화로 인해 연간 최소 15조 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 건강보험 총지출의 15%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구체적 재원 대책 없이 표심만을 노린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재원조달 방안, 현실성은 얼마나 되나
대선 후보들과 정부가 제시하는 간병비 재원조달 방안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다. 의료쇼핑, 불필요한 경증 환자 진료, 과잉진료 등을 억제해 2~3조 원의 재정 절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제도 개선이 상당 부분 이루어진 상황에서 추가 절감 여력은 미미하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은 매년 부정수급, 과잉진료, 사회적 입원 등 누수 요인을 관리하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로 인해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다.
둘째,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보험료를 100조 원에서 16조 원 추가 인상해야 현실적으로 간병비 급여화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민적 저항과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다. 실제로 보험료 1% 인상만으로도 수조 원의 추가 재원이 확보되지만,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로 국민 부담이 이미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셋째, 국고지원 확대가 있다. 현재도 건강보험 적자분을 국고에서 메우는 ‘가짜 흑자’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추가 국고지원은 국가재정 부담만 키울 뿐, 장기적 지속가능성은 담보할 수 없다. 국가재정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복지지출이 폭증하고 있어, 간병비 지원을 위한 추가 국고지원은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넷째, 지원대상과 급여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이다. 중증환자 등으로 한정해 적용하자는 제안이 있으나, 이 경우 간병비 부담의 근본적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도 전체 병상 중 10% 내외만 적용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간병비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병기금’ 신설,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국가재정이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별도의 ‘간병기금’ 신설을 제안한다. 이 방식은 건강보험의 본래 목적(치료비 보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금 규모와 지원 범위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간병보험제도’를 별도로 운영해 건강보험과 역할을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모두 재정 압박이 심각한 상황에서, 추가 기금 신설이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다. 결국 추가 재원 확보 없이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실효성 있는 대안, 무엇이 필요한가
실효성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간병비 급여화는 전면적 확대가 아니라, 중증·저소득층 등 사회적 필요성이 높은 계층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경증환자나 사회적 입원 등 불필요한 수요는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둘째, ‘간병기금’ 신설과 같은 다중재원 구조로 전환해 국민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국고가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기금 규모와 지원 범위는 사회적 합의와 재정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셋째, 민간보험사와의 협력, 지역사회 돌봄서비스(커뮤니티케어) 확대 등으로 공적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민간 협력모형을 법제화해 재정 부담을 다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건강보험 재정 누수 차단을 위해 의료쇼핑, 과잉진료, 사회적 입원 등 건강보험 누수 요인을 강력히 차단하고, 불필요한 경증환자 입원 억제 및 본인부담률 차등 적용 등 실질적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국민적 합의와 투명한 재정운영을 전제로 단계적 인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신뢰, 그 중요성
간병비 급여화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신뢰가 필수적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보험료 인상, 지원 범위 제한, 공공-민간 협력 등은 모두 국민의 동의와 신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간병비 급여화의 필요성과 재정 현실, 한계와 대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과의 열린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보험료 인상이나 지원 범위 제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적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병비 급여화 정책은 또 하나의 ‘공약(空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의 길, 냉정한 현실 인식이 먼저다
간병비 급여화는 복지국가로 가는 필수 관문이지만, ‘재정 블랙홀’을 감당할 구체적 대책 없는 포퓰리즘 공약은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지원 범위의 합리적 제한, 다중재원 구조, 공공-민간 협력 등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정치권은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라는 구호보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재정 현실을 알리고, 사회적 합의와 단계적 접근으로 실질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간병비 급여화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재원 대책은 깜깜한 상태다. 정치권은 국민을 상대로 ‘공짜 복지’ 환상을 팔지 말고, 실효성 있는 재원조달 방안이 없는 한 간병비 지원 확대는 ‘복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론: 간병비 급여화, 구호보다 ‘재정 현실’이 답이다
간병비 급여화는 국민적 공감대와 절박함을 등에 업고 있지만, 구체적 재원 마련 대책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정치권과 정부는 더 이상 표심만을 노린 포퓰리즘 공약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계적 확대, 다중재원 구조, 공공-민간 협력, 사회적 합의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간병비 부담을 줄이고, 진정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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